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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마당/이런저런 이야기

여성 입주자와의 만남

어제 저녁에 궁동아파트 자치회 행사의 하나로 "여성 입주자와의 만남" 시간을 가졌다. 그 취지라고 하자면, 아파트는 학생 부부를 위한 아파트이지만 실제로 아파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대부분 학생이 아닌 여성 입주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만남을 갖겠다는 것도 자치회 공약의 하나였다.

이 만남을 위해서 기도도 많이 했다. 내가 겸손한 마음으로 여성 입주자들의 건의를 잘 받아들일 수 있기를. 좋은 날씨, 많은 사람들이 오기를 기도하기도 했다. 덕분에 비가 오다가 모임 시간이 되어서는 비가 그쳤고, 사람들도 꽤 많이 왔다.

대체로 무난하게 진행되어 갔는데, 모임이 다 끝나고 정리될 무렵에 좀 문제가 생겼다. 한 여성이 아파트 경비 중 한 분이 근무태만이라는 것이다. 뭐 그렇게 느꼈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말을 쭉 들어보면 좀 막연하다. 경비실에만 앉아있다는 것으로 근무태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파트의 다른 한 경비처럼 돌아다니면서 정리도 하고 잡초도 뽑고 인사도 해야 한다는 것일까? 경비가 경비실에 앉아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로서는 참 당황스러웠다.

그래. 뭐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 끝나지가 않는다. 근무태만이라는 낱말만도 네 번은 이야기한 것 같다. 그래서 참다가 마지막에 결국 나도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 경비는 근무태만이 아니라고. 그 분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여성은 더 흥분해서 더 많은 말을 했다. 흠. 예상된 결과인가.

그 경비 아저씨는 정말 태만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때마다 아파트 순찰도 돌고, 들어오고 나간 차량 번호도 적는다. CCTV를 열심히 보고 계시고,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늘 확인한다.

사실 우리 아파트 경비는 다른 아파트에 비해 더 많은 세대를 담당하고 있다. 다른 아파트는 보통 40~50세대를 담당하게 되는데, 우리 아파트는 110세대에 해당하는 아파트 전체를 담당하고 있다. 게다가 최저임금만 받고 하루 12시간을 일하시는 경비 분들에게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싶은지. 이런 것을 다 설명할 수도 없었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여성분은 어떻게 자기가 받은 느낌만 가지고 근무태만이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생계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분에게 "근무태만"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그 여성에게 강하게 말하게 됐던 것이다.

이 모임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생각했지만, 막상 이렇게 되고 나니 좀 마음이 안 좋다. 기도와 준비가 부족했던 것인지, 여성 입주자의 의견을 듣겠다는 내가 너무 용감했던 것인지. 열심히 하는 경비 아저씨도 좀 안 됐다. 다음 해 임금을 올려드려야 되겠다는 하나도 논리적이지 않은 결론도 내 마음 속에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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