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지난 이야기/생각조각
시간 해상도
(gguro)
2004. 4. 2. 14:44
오래 전 시계라는 물건이 없었을 때 사람들은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으로 때를 구별했다. 그 때는 해질녘에 뒷동산 소나무 아래서 만나자고 하면 해가 질쯤부터 그 자리에 가서 기다리다가 해가 다 떨어질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해질녘의 언제쯤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때의 사람들이 가지던 시간 해상도는 한 나절(하루 낮은 절반)쯤이었다.
그런데 시계라는 물건이 생겼다. 우리나라의 경우, 앙부일구라는 해시계와 자격루라는 물시계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를 열둘로 나누었다. 자시(23:30~1:30)를 시작으로 축시, 인시, 묘시, .... 해시까지. 사람들은 이 시간기준으로 약속을 정했다. 사시에 동구밖에서 만나자고 하면 아침 9시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그 자리를 지켜야했다. 그렇다면 이 때의 시간 해상도는 두 시간이었나?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좀 더 똑똑했을 것이다. 진시에서 사시로 넘어갈 때 만나자고 하면 그들은 아침 9시 30분의 30분쯤 전부터 약속한 자리에 와서 9시 30분의 30분 후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즉, 한 시간쯤을 기다렸을 것이다. 학교에 다닐 때 과학시간에 배운 것을 기억하는가? 1mm를 최소 눈금으로 하는 자를 가지고 잴 수 있는 최소 길이는 0.5mm 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두 시간의 눈금을 가지는 시계로 잴 수 있는 최소 시간은 한 시간이다.
시대가 흘러 약을 넣고 돌아가는 손목시계를 모든 사람이 차게 되었다. 이 시계는 매우 정확해서 일주일이 지나도 1분 넘게 틀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항상 정확하게 시계를 맞추고 다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5분 정도 늦는 것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5분 빠른 시계를 차고 자신의 경쟁력은 거기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5분 정도는 늦어도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5분쯤 빨리 오는 것이 예의바른 사람이라고 평가받곤 했다. 이 시대의 시간 해상도는 5분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몇 십년이 지났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위성으로 때를 맞춰주는 휴대전화를 들고다닌다. 이 시계는 아무리 많이 틀려도 1~2초 정도의 차이밖에 안난다. 하지만 실제로 표시는 분 단위까지만 하기 때문에 초까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약속시간에 있어서의 정확도는 훨씬 높아졌다. 6시에 만나기로 했다고 생각해보자. 6시 1분에 온 사람은 틀림없이 늦었다. 그건 늦은 사람도 알고 기다린 사람도 안다. 누구나 같은 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정할 때에도 6시 5분 따위의 때를 만나는 때로 정하기도 한다. 그 몇 십년 전만해도 6시 정각과 6시 반의 두 가지 약속시간만 존재했었는데 말이다. 지금 시대의 시간 해상도는 30초가 아닐까 생각한다. 1분짜리 눈금을 가지고 잴 수 있는 최소 시간인 30초 말이다.
이렇게 잘게 쪼개진 시간을 모두 활용해 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십년 전처럼 또는 몇 백년 전처럼 긴 폭의 시간이 주어져야만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첫 번째 종류의 사람들은 경쟁력을 갖춘 사람이라 불리게 되고 두 번째 종류의 사람들은 시간 활용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사회에서 뒤쳐지게 된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더 피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0.001초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 시계를 가지고 다니는 시대가 올까?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시대에 맞춰 더 정확하게 그리고 더 피곤하게 살게될까?
어떻든 시간을 더 잘게 쪼개서 더 세밀하게 쓰는 사람일수록 더 효율적인 인간이 된다. 꼭 그것이 우리의 목표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시계라는 물건이 생겼다. 우리나라의 경우, 앙부일구라는 해시계와 자격루라는 물시계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를 열둘로 나누었다. 자시(23:30~1:30)를 시작으로 축시, 인시, 묘시, .... 해시까지. 사람들은 이 시간기준으로 약속을 정했다. 사시에 동구밖에서 만나자고 하면 아침 9시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그 자리를 지켜야했다. 그렇다면 이 때의 시간 해상도는 두 시간이었나?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좀 더 똑똑했을 것이다. 진시에서 사시로 넘어갈 때 만나자고 하면 그들은 아침 9시 30분의 30분쯤 전부터 약속한 자리에 와서 9시 30분의 30분 후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즉, 한 시간쯤을 기다렸을 것이다. 학교에 다닐 때 과학시간에 배운 것을 기억하는가? 1mm를 최소 눈금으로 하는 자를 가지고 잴 수 있는 최소 길이는 0.5mm 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두 시간의 눈금을 가지는 시계로 잴 수 있는 최소 시간은 한 시간이다.
시대가 흘러 약을 넣고 돌아가는 손목시계를 모든 사람이 차게 되었다. 이 시계는 매우 정확해서 일주일이 지나도 1분 넘게 틀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항상 정확하게 시계를 맞추고 다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5분 정도 늦는 것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5분 빠른 시계를 차고 자신의 경쟁력은 거기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5분 정도는 늦어도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5분쯤 빨리 오는 것이 예의바른 사람이라고 평가받곤 했다. 이 시대의 시간 해상도는 5분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몇 십년이 지났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위성으로 때를 맞춰주는 휴대전화를 들고다닌다. 이 시계는 아무리 많이 틀려도 1~2초 정도의 차이밖에 안난다. 하지만 실제로 표시는 분 단위까지만 하기 때문에 초까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약속시간에 있어서의 정확도는 훨씬 높아졌다. 6시에 만나기로 했다고 생각해보자. 6시 1분에 온 사람은 틀림없이 늦었다. 그건 늦은 사람도 알고 기다린 사람도 안다. 누구나 같은 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정할 때에도 6시 5분 따위의 때를 만나는 때로 정하기도 한다. 그 몇 십년 전만해도 6시 정각과 6시 반의 두 가지 약속시간만 존재했었는데 말이다. 지금 시대의 시간 해상도는 30초가 아닐까 생각한다. 1분짜리 눈금을 가지고 잴 수 있는 최소 시간인 30초 말이다.
이렇게 잘게 쪼개진 시간을 모두 활용해 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십년 전처럼 또는 몇 백년 전처럼 긴 폭의 시간이 주어져야만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첫 번째 종류의 사람들은 경쟁력을 갖춘 사람이라 불리게 되고 두 번째 종류의 사람들은 시간 활용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사회에서 뒤쳐지게 된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더 피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0.001초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 시계를 가지고 다니는 시대가 올까?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시대에 맞춰 더 정확하게 그리고 더 피곤하게 살게될까?
어떻든 시간을 더 잘게 쪼개서 더 세밀하게 쓰는 사람일수록 더 효율적인 인간이 된다. 꼭 그것이 우리의 목표는 아니더라도 말이다.